롤리 핑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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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롤리 핑거스는 미국의 야구 선수로, 1968년부터 1985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밀워키 브루어스 등에서 뛰었으며, 특히 마무리 투수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현대 구원 투수의 전형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핑거스는 통산 341세이브를 기록했으며, 1974년 월드 시리즈 MVP, 1981년 사이 영 상과 MVP를 수상했다. 1992년에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그의 등번호 34번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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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 핑거스 | |
---|---|
기본 정보 | |
![]() | |
포지션 | 투수 |
타석 | 우타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946년 8월 25일 |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주 스튜벤빌 |
프로 경력 | |
데뷔 리그 | MLB |
데뷔일 | 1968년 9월 15일 |
데뷔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최종 리그 | MLB |
최종일 | 1985년 9월 17일 |
최종 팀 | 밀워키 브루어스 |
기록 | |
리그 | MLB |
승패 기록 | 114승 118패 |
평균자책점 | 2.90 |
삼진 | 1,299 |
세이브 | 341 |
소속 팀 | |
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8년~1976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77년~1980년) 밀워키 브루어스 (1981년~1982년, 1984년~1985년) |
수상 경력 | |
올스타 | 7회 (1973년~1976년, 1978년, 1981년, 1982년) |
월드 시리즈 우승 | 3회 (1972년~1974년) |
AL MVP | 1981년 |
AL 사이 영 상 | 1981년 |
월드 시리즈 MVP | 1974년 |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 | 4회 (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
MLB 세이브 선두 | 3회 (1977년, 1978년, 1981년) |
노히터 | 1975년 9월 28일 (합작) |
명예의 전당 | |
종류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
선정 연도 | 1992년 |
득표율 | 81.2% (2차 투표) |
기타 | |
등번호 은퇴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 34 밀워키 브루어스 No. 34 |
2. 어린 시절
핑거스는 오하이오주 스튜벤빌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업랜드에 있는 업랜드 고등학교를 다녔다.[1][2] 그의 아버지 조지 마이클 핑거스는 제철소 노동자였으며,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3][4]
2. 1. 유년기 및 고등학교 시절
오하이오주 스튜벤빌에서 조지 마이클 핑거스와 에드나 펄 핑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1][2] 그의 아버지(과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마이너 리그 야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스탠 뮤지얼과 룸메이트였다)는 스튜벤빌 제철소에서 일했다.[3] 어느 날 조지 핑거스는 일터에서 돌아와 지쳐서 "이제 그만, 캘리포니아주로 이사 갈 거야."라고 말했다.[3] 그의 아버지는 집을 1500USD에 팔고 차를 산 후, 가족을 쿠카몽가(샌버너디노 군)로 데려갔는데, 이곳은 나중에 다른 세 곳과 합쳐져 랜초 쿠카몽가 시가 되었다.[3] 그들은 호텔에 묵을 형편이 되지 않아 고속도로 옆에서 침낭을 덮고 잤다.[3]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후 조지 핑거스는 결국 인근의 카이저 제철소에서 다시 철강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3][4]핑거스는 인근 캘리포니아주 업랜드에 있는 업랜드 고등학교에 다녔다.
2. 2. 대학교 시절
핑거스는 채피 칼리지에서 한 학기를 다녔다.[5]3. 프로 선수 경력
핑거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20000USD 계약금 제안을 거절하고, 196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더 적은 금액인 13000USD에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했다.[3][4][5] 애슬레틱스는 그를 투수와 외야수 중 어느 포지션으로 기용할지 고민하다 투수로 결정했고, 1965년 시즌에 플로리다 주 리그의 A 클래스 리스버그 애슬레틱스에 배정했다. 1966년에는 캘리포니아 리그의 A 클래스 모데스토 레즈에서, 1968년과 1969년 두 시즌 동안 AA 클래스 사우스턴 리그의 버밍햄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다.[1]
1967년 마이너 리그 개막 직전, 핑거스는 타구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와 턱이 부러지고 이가 여러 개 빠지는 부상을 입었다. 5주 동안 턱을 묶고 있어야 했고, 복귀 후에도 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3][6][7][8] 핑거스는 마이너 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9]
1968년 시즌 후반,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옮긴 애슬레틱스에 합류하여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69년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첫 승을 기록했고,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1970년에는 19번 선발 등판했지만,[10] 1971년 5월 1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다.[11] 1971년 5월, 애슬레틱스 감독 딕 윌리엄스는 핑거스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9]
1972년, 1973년, 1974년 월드 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일원이었으며, 1974년에는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74년 월드 시리즈 직전, 핑거스는 동료 블루 문 오덤과 라커룸에서 싸움을 벌여 머리에 여섯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16]
1976년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은 핑거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했다.[18][19] 파드리스에서 1977년, 1978년, 1980년에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다.[20][21]
1980년 시즌 후,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거쳐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했다.[23][24][25] 1981년에는 사이 영 상, 아메리칸 리그 MVP,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을 모두 수상했다.[20][22][26] 1982년에는 부상으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1985년까지 브루어스에서 활약했다.
1985년 9월 4일, 스파키 라일의 아메리칸 리그 통산 세이브 기록(232세이브)을 경신했다. 1985년 9월 17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 1. 마이너 리그 시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핑거스에게 20000USD의 계약금을 제시했지만, 핑거스는 샌디 쿠팩스와 돈 드라이스데일을 포함한 탄탄한 투수진을 갖춘 다저스가 이미 페넌트레이스를 휩쓸고 있었고, 팜 시스템에도 재능 있는 선수들로 가득 차 있어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기까지 몇 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저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196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더 적은 돈(13000USD)으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와 계약했다.[3][4][5] 처음에는 애슬레틱스가 그를 투수로 기용할지, 외야수로 기용할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투수로 뛰게 하기로 결정한 후 1965년 시즌에 플로리다 주 리그의 A 클래스 리스버그 애슬레틱스에 배정되었다. 1966년에는 캘리포니아 리그의 A 클래스 모데스토 레즈에서 뛰었고, 1968년과 1969년 두 시즌 동안 AA 클래스 사우스턴 리그의 버밍햄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다.[1]1967년 마이너 리그 개막일, 고등학교 동창이자 업랜드 고등학교 팀 통계 담당자였던 질과 결혼한 지 불과 9일 만에, 핑거스는 버밍햄에서 타구에 얼굴을 맞아 광대뼈, 턱이 부러지고 이가 몇 개 빠졌다. 그의 턱은 5주 동안 묶여 있었고, 그가 다시 경기에 복귀했을 때, 핑거스는 공이 쳐질 때마다 점프했고, 다시 마운드에 적응하는 데 남은 시즌의 절반 정도가 걸렸다.[3][6][7][8]
핑거스는 마이너 리그 경력 내내 선발 투수였다.[9]
3. 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8–1976)
그는 1968년 시즌 후반에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옮긴 애슬레틱스에 합류했고, 9월 15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빌 프리한의 홈런, 볼넷 1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허용하고 폭투를 던지며 4실점하고 4아웃밖에 잡지 못해 13–0으로 패하는 재앙적인 시작을 보였고, 그 해 유일한 등판이었다.[10] 1969년 시즌은 극적인 발전을 보였다. 4월 22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완봉승(7-0)으로 통산 첫 승을 거두었고, 5월 13일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1970년에 19번 선발 등판을 했지만,[10] 1971년 5월 1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선발 등판은 정규 로테이션에서 마지막이었다. 그 경기에서 5이닝 동안 4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11] 4월 29일, 짐 팔머와의 투수전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3–2로 패하며 개인 통산 최다인 10탈삼진을 기록했고, 그가 던진 마지막 완투 경기였다. 5월 21일, 핑거스는 오클랜드에서 열린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블루 문 오덤이 단 8명의 타자를 상대로 3실점 3볼넷을 기록한 후 1회에 등판하여 구원 투수로 나섰다. 핑거스는 이닝을 던지며 3안타 2실점을 허용했다.[12] 그 달 말, 애슬레틱스 감독 딕 윌리엄스는 핑거스를 마무리 투수로 결정했다.[9] 그 경기부터 시작하여 7월 15일까지 핑거스는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그 사이 11번의 무실점 등판에서 승리 1번과 세이브 6번, 7월 9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7이닝 구원 등판을 기록했다.1972년 시즌 동안 핑거스는 5회에 4번 등판했지만, 대부분 6회 이후에 등판했다.[13] 그는 1973년에 2번의 선발 등판을 했는데, 4월 21일 홈에서 에인절스를 상대로, 5월 7일 원정에서 오리올스를 상대로 했고, 후자는 그의 선수 경력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다. 이 두 경기를 제외하고, 그의 선수 경력의 나머지 기간 동안 가장 일찍 등판한 경기는 6회였으며, 이는 세 번 더 있었다.[14] 그는 보통 7, 8, 9회에 등판했다.[15] 1973년 시즌 동안 핑거스는 존 와이어트가 애슬레틱스에서 기록한 통산 73세이브 기록을 깼다.
핑거스는 1972년, 1973년, 1974년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현대 야구에서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의 일원이었다. 세 번째 우승에서 그는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시리즈에서 3세이브와 1승을 거두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1974년 월드 시리즈가 시작되기 직전, 핑거스와 오덤은 오덤이 핑거스의 아내에 대해 언급한 발언으로 인해 애슬레틱스 라커룸에서 싸움을 벌였다. 이 사건은 1분도 채 안 되었지만 핑거스는 머리에 여섯 바늘을 꿰매야 했고, 오덤은 발목을 접질려 눈에 띄게 절뚝거렸다.[16]
야구의 보류 조항이 종료되면서 다년 계약을 맺지 않은 모든 선수들은 1976년 시즌 이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될 예정이었다. 애슬레틱스 구단주 찰리 파이널리는 핵심 선수들과 재계약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핑거스와 조 루디를 각각 100만달러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비다 블루를 150만달러에 뉴욕 양키스에 팔려고 했다. 커미셔너 오브 베이스볼인 바우이 쿤은 이 거래가 "야구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무효화했다. 파이널리는 쿤을 고소했고, 핑거스, 루디, 블루를 다른 팀 소속이라며 벤치에 앉혔다. 애슬레틱스 선수들은 뛰지 않으면 파이널리에 대항하여 파업하겠다고 위협했고, 파이널리는 굴복했다.[17]
3. 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77–1980)
1976년 시즌 후, 핑거스는 자유 계약 선수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했다.[18][19] 핑거스는 파드리스 소속으로 1977년, 1978년, 1980년에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다.[20][21] 같은 해에 스포츠 뉴스 올해의 구원 투수로도 선정되었다.[22]파드리스에 합류한 첫 시즌에 비센테 로모와 버치 멧츠거가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던 구단 통산 16세이브 기록을 넘어섰다. 1978년에는 클레이 캐롤이 세운 내셔널 리그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인 37세이브와 타이를 이루었다. 이 기록은 이듬해 브루스 서터에 의해 다시 타이를 이루었고, 1984년에 서터가 45세이브를 기록하며 깨졌다. 파드리스에서 활동하는 동안 핑거스는 팀 동료 랜디 존스를 제치고 구단 통산 투구 경기 수 265경기로 1위에 올랐다.
3. 4. 밀워키 브루어스 (1981–1982, 1984–1985)
1980년 시즌 후, 핑거스는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거쳐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했다.[23][24][25] 1981년, 그는 사이 영 상, 아메리칸 리그 MVP,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을 모두 수상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20][22][26] 그는 스포팅 뉴스 올해의 구원 투수상, 롤레이즈 올해의 구원 투수상,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상(아메리칸 리그 구원 투수 최초), 그리고 AL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브루어스는 창단 13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982년, 핑거스는 29개의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시즌 대부분을 통증 속에 뛰었고, 결국 브루어스의 첫 월드 시리즈 출전을 놓치고 말았다. 브루어스는 이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7경기 만에 패했다.[27] 핑거스는 부상으로 1983년 시즌을 결장했고, 1984년 8월에는 등에서 추간판 탈출증을 제거하기 위한 추간판 절제술을 받았다. 1984년 시즌 동안 그는 브루어스에서 통산 61세이브를 기록한 켄 샌더스의 기록을 넘어섰다.
1985년 9월 4일, 핑거스는 스파키 라일의 아메리칸 리그 통산 232세이브 기록을 경신하며,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1-10으로 승리하며 9회에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메이저 리그 출전은 9월 17일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한 경기였다. 그는 8회말 테디 히구에라를 구원 등판하여 두 타자를 상대했다. 게리 로에니케에게 홈런을 허용했지만, 릭 뎀프시를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마무리했고, 오리올스는 6-0으로 승리했다.[28]
브루어스에서 방출된 후, 1986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구단주 마지 쇼트의 선수 면도 의무화 정책 때문에 거절했다. 핑거스는 빌 버게쉬에게 "마지 쇼트에게 그녀의 세인트 버나드 수염을 깎으라고 전해주면, 내가 내 콧수염을 깎겠다."라고 답했다.[30]
4. 현대 구원 투수의 재정립
핑거스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을 당시, 구원 투수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선발 투수가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경기를 거의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8년 시즌 이후 팀 공격력이 증가했고, 특히 아메리카 리그가 1973년에 지명 타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감독들은 후반 이닝에서 리드를 지키기 위해 선발 투수를 교체하여 상대의 막판 반격을 막는 데 더욱 적극적이 되었다. 1960년대 동안, 양 리그의 연간 세이브 리더들은 20~25세이브 정도를 기록하는 경향이 있었다. 로이 페이스와 너클볼 투수 호이트 윌헬름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구원 투수 역할을 2~3년 이상 유지하는 투수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마무리 투수의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에, 핑거스의 뛰어난 구원 투수 활약은 그가 연간 세이브 기록을 30개 이상으로 점차 늘릴 수 있게 했다. 1980년에는 윌헬름의 227세이브 기록을 깨고, 결국 341세이브로 마무리했다. 이 기록은 제프 리어든이 1992년에 넘어설 때까지 유지되었다.
핑거스는 현대 구원 투수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수년간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정의했다. 1960년대까지 야구에서 일반적으로 그랬듯이, 핑거스는 선발 투수로서의 부진으로 인해 불펜으로 옮겨졌고, 결국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핑거스 이전에는, 전직 선발 투수가 불펜에서 성공을 거두면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핑거스와 스파키 라일, 구스 고사지와 같은 동시대 선수들의 성공으로 인해, 뛰어난 투수는 3선발 또는 4선발로 활약하는 것보다 마무리 투수로서 팀에 더 큰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예를 들어, 고사지는 몇 시즌 동안 구원 투수로 활약한 후 선발 로테이션으로 이동했다. 선발 투수로서 그는 17번의 완투 경기를 펼쳤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영구적으로 불펜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 이후 팀들은 성공적인 선발 투수들, 특히 데니스 에커슬리, 데이브 리게티, 존 스몰츠 등을 선발 로테이션으로 복귀시킬 계획 없이 '영구적인' 마무리 투수 역할로 기용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었다. (스몰츠는 2005년에 선발 로테이션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기도 했다.) 2006년에는 브루스 수터가 메이저 리그 통산 한 경기도 선발 출장하지 않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투수가 되었다.
5. 콧수염
Baseball-Reference.com은 핑거스의 콧수염을 역사상 최고로 평가한다.[29] 핑거스는 투구 능력 외에도 왁스 칠한 손잡이 콧수염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처음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주 찰스 O. 핀리로부터 300USD의 보너스를 받기 위해 기른 것이었다. 1972 시즌 스프링 트레이닝 첫날, 레지 잭슨이 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다. 이에 항의하며, 핑거스와 몇몇 선수들은 애슬레틱스 구단이 잭슨에게 수염을 깎게 할 것이라고 믿고 면도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자 쇼맨십이 강해 티켓 판매를 위해 거의 모든 일을 하던 핀리는 개막일(4월 15일, 미네소타전)까지 가장 멋지게 수염을 기르고 유지하는 선수에게 상금을 제공했다. 핑거스는 핀리가 제시한 금전적 인센티브에 맞춰 19세기 후반 선수들의 이미지를 따라 콧수염을 길렀다.[30] 핀리는 더 나아가 경기장에서 "콧수염의 날"을 만들어 콧수염을 기른 팬들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했다.[31]
캣피쉬 헌터와 켄 홀츠먼도 보너스를 노렸지만, 스니들리 위플래쉬 스타일의 콧수염을 가진 핑거스가 상을 받았다.[32][33] 핑거스는 나중에 "우리 중 대부분은 300USD만 준다면 신체의 어느 부위에든 콧수염을 길렀을 것"이라고 말했다.[34] 선수들은 "콧수염 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35] 원래 핵심 선수들이 해체되기 전, 많은 명예의 전당 입성 선수들은 그들의 강한 팔뿐만 아니라 콧수염의 위력도 인정했다. 윌리 메이스는 은퇴 전에 핑거스의 콧수염을 보면서 자신의 경력을 제대로 마무리한다고 생각했다. 빌 벅너는 "내 스윙보다 더 강한 것은 그의 콧수염의 아름다움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니 벤치는 포수로서 핑거스의 콧수염을 보며 신시내티 레즈와 함께 두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준비했다고 언급했다. 1975–76년에 팀이 대부분의 선수들을 트레이드한 후, 대부분의 전 애슬레틱스 선수들이 콧수염을 깎았지만, 핑거스는 1977년에 자유 계약 선수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한 후에도 콧수염을 유지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콧수염을 가지고 있다.
핑거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은 핸들바 콧수염이라고 불리며, 자전거 핸들바처럼 굽어져 있고 뾰족한 부분은 약간 위로 향해 있다. 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한신 타이거스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에모토 다케노리는 현역 시절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이는 핑거스의 영향이었다고 저서에서 말했다.
6. 명예 및 은퇴 이후
1992년, 핑거스는 호이트 빌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구원 투수가 되었다.[39] 이후 브루스 서터, 구스 고사지, 트레버 호프만, 마리아노 리베라, 리 스미스가 헌액되었으며, 커리어 전반은 선발 투수, 후반은 구원 투수로 활동한 데니스 에커슬리도 헌액되었다. 핑거스의 등번호 '''34'''번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39] 핑거스는 두 개 이상의 팀에서 영구 결번된 선수 10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99년, 핑거스는 ''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100인 중 96위에 올랐으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최종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후 핑거스는 단명했던 시니어 프로페셔널 야구 협회에서 한 시즌을 뛰기도 했다.
2000년, 핑거스는 샌디에이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0년 12월, 핑거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는 경매에서 75330USD에 판매되었다.
6. 1. 소득세 논란
2007년 1월 2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핑거스가 브루어스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발생한 140만달러 이상의 위스콘신 주 소득세 미납액(이자 110만달러 포함)이 있으며, 당시 주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세금 체납자였다고 보도했다.[39] 핑거스는 이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2005년에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으며, 브루어스에서 받는 급여에 대한 세금은 제대로 원천징수되었다고 말했다.8월 15일, AP통신은 핑거스의 이름이 전 달에 위스콘신 주 세금 체납자 명단에서 삭제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AP통신에 "그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140만달러를 빚지고 있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라고 말했죠.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981년까지 소득세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문제는 다 해결되었고, 그때도 세금을 냈으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재무부도 지금 저를 좋게 보고 있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40]
7. 미디어 출연
핑거스는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라디오 쇼에 출연했다. 그는 야구 경험과 관련된 책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8. 상세 정보
롤리 핑거스는 주로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196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데뷔하여 1985년까지 17시즌 동안 통산 944경기에 출장, 114승 118패 341세이브, 평균자책점 2.90, WHIP 1.16을 기록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MLB 세이브왕 3회(1977년, 1978년, 1981년), MLB 최우수 구원 투수상 4회(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MLB 올스타 게임 7회(1973~1976, 1978, 1981, 1982) 선출이 있다.
핑거스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등번호 3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받았다. 1968년에는 등번호 32번과 38번을 사용하기도 했다.
통산 수비 기록은 944경기에서 108자살, 253보살, 14실책, 23병살, 수비율 0.963이다.
8. 1.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 소속팀 | 경기 | 선발 | 완투 | 완봉 | 무4구 | 승리 | 패배 | 세이브 | 홀드 | 승률 | 타자 | 투구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고의4구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1968 | OAK | 1 | 0 | 0 | 0 | 0 | 0 | 0 | 0 | - | - | 9 | 1.1 | 4 | 1 | 1 | 0 | 1 | 0 | 1 | 0 | 4 | 4 | 27.00 | 3.75 | ||||||||||||||||||||||||||||||||||||||||||||||||||||||||||||||||||||||||||||||||||||||||||||||||||||||||||||||||||||||||||||||||||||||||||||||||||||||||||||||||||||||||||||||||||||||||||||||||||||||||||||||||||||||||||||||||||||||||||||||||||||||||||||||||||||||||||||||||||||||||||||||||||||||||||||||||||||||||||||||||||||||||||||||||||||||||||||||||||||||||
1969 | 60 | 8 | 1 | 1 | 0 | 6 | 7 | 12 | - | .462 | 503 | {{cvt|119.0|} | } || 116 || 13 || 41 || 5 || 4 || 61 || 1 || 1 || 60 || 49 || 3.71 || 1.32
연도 | 구단 | 투수 | |||||
---|---|---|---|---|---|---|---|
경기 | 자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68 | OAK | 1 | 0 | 0 | 0 | 0 | - |
1969 | 60 | 9 | 30 | 3 | 3 | .929 | |
1970 | 45 | 7 | 26 | 2 | 3 | .943 | |
1971 | 48 | 14 | 24 | 0 | 4 | 1.000 | |
1972 | 65 | 7 | 11 | 0 | 1 | 1.000 | |
1973 | 62 | 3 | 14 | 1 | 0 | .944 | |
1974 | 76 | 9 | 21 | 0 | 4 | 1.000 | |
1975 | 75 | 8 | 14 | 0 | 2 | 1.000 | |
1976 | 70 | 4 | 26 | 1 | 2 | .968 | |
1977 | SD | 78 | 5 | 19 | 3 | 0 | .889 |
1978 | 67 | 14 | 12 | 1 | 1 | .963 | |
1979 | 54 | 3 | 9 | 1 | 0 | .923 | |
1980 | 66 | 9 | 11 | 1 | 0 | .952 | |
1981 | MIL | 47 | 2 | 13 | 1 | 1 | .938 |
1982 | 50 | 4 | 10 | 0 | 1 | 1.000 | |
1984 | 33 | 3 | 3 | 0 | 0 | 1.000 | |
1985 | 47 | 7 | 10 | 0 | 1 | 1.000 | |
MLB | 944 | 108 | 253 | 14 | 23 | .963 |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8. 2.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소속팀 | 포지션 | 경기수 | 선발 | 완투 | 완봉 | 실책 | 자책점 | 평균 자책 |
---|---|---|---|---|---|---|---|---|---|
1968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4 | 0 | 0 | 0 | 0 | 0 | 0.00 |
1969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50 | 0 | 0 | 0 | 0 | 0 | 0.00 |
1970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45 | 0 | 0 | 0 | 1 | 31 | 3.69 |
1971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58 | 0 | 0 | 0 | 1 | 26 | 3.11 |
1972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65 | 0 | 0 | 0 | 3 | 37 | 2.51 |
1973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76 | 0 | 0 | 0 | 0 | 34 | 1.92 |
1974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76 | 0 | 0 | 0 | 1 | 40 | 2.65 |
1975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75 | 0 | 0 | 0 | 2 | 46 | 3.29 |
1976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투수 | 63 | 0 | 0 | 0 | 1 | 32 | 3.36 |
1977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투수 | 78 | 0 | 0 | 0 | 0 | 40 | 2.99 |
1978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투수 | 67 | 0 | 0 | 0 | 1 | 31 | 2.52 |
1979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투수 | 55 | 0 | 0 | 0 | 3 | 44 | 4.46 |
1980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투수 | 69 | 0 | 0 | 0 | 3 | 46 | 4.04 |
1981 | 밀워키 브루어스 | 투수 | 47 | 0 | 0 | 0 | 0 | 6 | 1.04 |
1982 | 밀워키 브루어스 | 투수 | 50 | 0 | 0 | 0 | 2 | 24 | 2.60 |
1984 | 밀워키 브루어스 | 투수 | 42 | 0 | 0 | 0 | 0 | 11 | 1.96 |
1985 | 밀워키 브루어스 | 투수 | 41 | 0 | 0 | 0 | 2 | 47 | 5.10 |
8. 3. 타이틀
타이틀 | 내용 |
---|---|
MLB 세이브왕 | 3회 (1977년, 1978년, 1981년) |
MLB 최우수 구원 투수상 | 4회 (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
MLB 올스타 게임 선출 | 7회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8년, 1981년, 1982년) |
영구 결번 | 3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밀워키 브루어스) |
8. 4. 수상
수상 | 횟수 | 연도 |
---|---|---|
MLB 세이브왕 | 3회 | 1977년, 1978년, 1981년 |
MLB 최우수 구원 투수상 | 4회 | 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
MLB 올스타 게임 선출 | 7회 | 1973년-1976년, 1978년, 1981년, 1982년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밀워키 브루어스 영구 결번 | 1회 | 1969년-1982년, 1984년-1985년 |
8. 5. 기록
타이틀 | 횟수 | 연도 |
---|---|---|
MLB 세이브왕 | 3회 | 1977년, 1978년, 1981년 |
MLB 최우수 구원 투수상 | 4회 | 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
MLB 올스타 게임 선출 | 7회 |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8년, 1981년, 1982년 |
등번호 | 기간 | 비고 |
---|---|---|
32 | 1968년 - 같은 해 도중 | |
38 | 1968년 도중 - 같은 해 종료 | |
34 | 1969년 - 1982년, 1984년 - 1985년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밀워키 브루어스 영구 결번 |
8. 6. 등번호
핑거스는 1968년에 등번호 32번과 38번을 사용했고, 1969년부터 1982년,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등번호 34번을 사용했다. 등번호 34번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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